일상(차담)법문 2017-02-05T12:42:35+00:00

마음이 무심이면 어떤 목적도 생기지 않는다.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온다. 그래도 흘러가는 데로 방치하지도 않는다(2014.9.11)

작성자
수신오도 수신오도
작성일
2017-02-08 16:00
조회
1522
허공이 되면 있는 그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장소와 거리에 상관없이 느낄수가 있다. 수행이 어느정도 무르익으면 다른 이한테 자신의 수행력을 주입시키며 인지시키고 싶어하는데 즉, 자신의 능력을 알리고 싶어하는데 그것이 바로 상이다. 수행이 익어지면 그런 마음조차 생기지 않고 행하게 되는데 체득없이 이론으로 무장된 사람은 상을 내뿜게 마련이다

내가 산에서 수행할 때 책이란 책은 다 읽었다. 그  많은 책들 중에 건질 책은 한권도 없었다. 유심세계의 모든 책들은 다 사서다. 하물며 경전까지도 살아 숨쉬는 경전은 몇 권 안 된다. 지혜가 없이 경전을 보면 판단을 못한다. 지금의 경전은.

살아있는 경전이라 함은 현대에 맞아야 하는데 현대에 맞지 않을 때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살아있는 경전이라도 누가 읽는가에 따라 생사가 나뉘는 것이다. 즉, 깨친 자가 보느냐 그렇지 못한 자가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다른 것이다.

달마나 석가나 혜가나 나나 똑같은 말을 하는데 왜 다르다고 하는가? 모두 무심으로 얘기하는데 똑 같다. 무심이면 똑같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심이면 한결 같아야 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심자의 말인지 무심자의 말인지 아는 것이다. 절대 각자는 다른 이의 글을 풀이하지 않으며  남의 살림살이를 인용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깨달음을 말할 뿐이다.

무심에 다다르면 지난 각자들의 느낌이 그대로 오는데 그것은 그 어른들의 시대와 문화와 느낌까지도 같은 공간에 있는 느낌이다. 누가 어떤 질의를 해와도 내 입을 통해 나가는 그 말들이 마치 달마가 하는 말과 같다. 그것이다. 각자라면 본질은 똑같다.

비유편이나 방편편을 읽을 떄도 지혜를 가지고 봐야한다. 예를 들어 두 친구 중에 한 친구는 부자고 한 친구는 가난하다. 부자인 친구가 가난한 친구 옷에 다이아몬드를 숨겨놓았다. 그것을 모르는 가난한 친구는 다이아몬드를 지닌 것도 모른 채 걸식을 하고 다녔다. 이 때 이 다이아는 무엇이냐? 부자인 친구는 누구냐? 이것을 표현할 때 인간은 원래 부처의 몸인데 그것을 몰라서 중생으로 살아간다. 이것은 다 이해하겠지. 하지만 다이아몬드를 숨겨놓고 꿰매어 준 부자 친구의 심정을 알까? 헤매는 가난한 친구를 보며 어떤 느낌일지를 알까? 각자가 아니면 그 느낌을 모른다. 그 느낌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데 모른 상태에서 경전을 해석하고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게 좀 더 주어진 것이 있다면 즉 옛 각자하고 다른것이 있다면 과학이다. 옛날 법문 들고 미주알고주알 외쳐 보아야 안 먹힌다. 나의 제자들도 이와 같기를 당부한다. 마음이 무심이면 어떤 목적도 생기지 않는다.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온다. 그래도 흘러가는 데로 방치하지도 않는다. 유심세계의 흐름은 훤하다. 그래서 거기에 맞추어 갈 뿐이다.

법을 외칠때 무심으로 행해야 되는 것이다. 무심이라야 향기가 진하게 퍼지는 것이다. 가다가 못 펼치면 주저 앉으면 되고 앉은 김에 좌선하면 되지 안타까울 것도 없다. 자기가 무심이 될수록 그 향은 천지를 덮게 되어 있다. 이것이 법이다. 이것이 법의 힘이다. 수신오도가 날로 번지려면 나의 제자들이 무심으로 다가갈 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대 아쉬람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그 힘은 무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의 힘보다 나의 제자들이 무심으로 변했을 때 그 힘이 전세계로 퍼지는 것이다.

 어느 곳 언제 무엇이든 나라는 상이 생기면 틀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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